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 최은숙 | 2022-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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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 베드로 전후서는 고난 당하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사역을 보면 베드로도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 못했는데 이것은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했고 기복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그리 마옵소서.” 하며 주님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고난에 대한 해석을 받으면서 십자가를 가꾸로 지고 순교하기까지 베드로의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고난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지는 고난을 겪으면서 육성이 벗겨지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고 고난 없이는 갈 수 없는 천국 길을 고난당한 자만이 압니다. 고난을 당하여 실족하는 자도 있지만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죄를 보며 가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성경적인 것으로 성경에서는 고난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주시는 것은 단련시켜서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오게끔 다듬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중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인 것을 알게 됩니다. 13절,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복이 있다 하는데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입증 됩니다. 그래서 몸은 죽여도 영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말고 영혼까지 죽일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너는 내 것이라 인치시고 인도해 가시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끔찍한 핍박과 박해를 받아도 주님이 인치신 자의 신앙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서 생명을 건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랄 때 고난이 변장된 축복으로 우리에게 열려지게 됩니다.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불순물이 빠지는 연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난 앞에 우리의 자세는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이유와 영육 간에 유익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14절,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우리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주님나라 갈 때까지 책임져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려면 온유함으로 묵묵히 감당하고 가다 보면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를 삼을 때에 고난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고난을 받아보면 내가 세상을 의지 했는지 주님을 의지했는지 다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이때 말씀으로 넘어가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의 사람임을 증명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왜 고난을 받는가? 구원이 목적인 인생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답이 다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적으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련을 받으면 극한 고난 가운데 우리에게 나타나는 태도와 반응이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납니다. 구원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말씀에 매인 자가 될 때 하나님의 권능을 맛보아 알수있습니다. 말씀이 그리스도이시고 말씀이 생명이고 말씀이 우리를 저주에서 건져내고 영생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그리스도를 주로 삼은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내 소견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말씀이 나를 주관 하실 수 있도록 순종하고 가는 길이 구원의 세계입니다. 17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데 악을 행함으로 고남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속성대로 살지 않고 죽은 자처럼 고난을 받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살아가면 갈수록 그 끝이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십자가 밖에 길이 없습니다. 육성이 죽지 않고는 주님의 형상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악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말씀으로 우리를 채우고 악에 대처하는 지혜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깨끗한 양심 이것이 믿음의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난을 받으면 선한 양심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잠시지만 상은 영원한 것을 알고 끝까지 잘 감당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질기디 질긴 육성을 끊어내기 위한 고난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고난으로 내가 벗을 수 없는 것을 벗게 도와주시고 끊을 수 없는 것을 끊어내게 도와주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주의 마음에 합한 자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구원을 강청할 수 있는 변화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자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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