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 이명빈 | 2022-1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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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3:13-17절 개역개정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전후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포함한 그 당시 굉장히 심한 박해와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고난을 전혀 이해를 못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구원사역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 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없을 만큼 그들은 세상에 큰 자가 되기 원했고 기복에 젖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때가차서 예루살렘으로 가는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너희는 내가 로마정권을 뒤집어엎어서 정권을 탈취 하는줄로 아는데 그것이 아니고 나는 공회에 잡히게 될것이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것이다. 못박히기 전까지 내가 심문을 받고 재판을 받을 것이지만 내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거야 > 이렇게 말씀하실때 베드로가 탁 나서서 <그리하지 마옵소서,주님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수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때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니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또 그들에게 저들이 목자를 치면 너희가 다 흩어질거라고 말씀을 하실때 베드로는 다 흩어질지라도 나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너가 나를 세번 부인할거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고난을 왜 당하는지,죄가 뭔지를 모르고 그냥 믿기는 믿는데 오직 기복에 젖어서 많고 많은
우상중에 하나로 그냥 형통하기를 원하고 자기 원하는대로 소견대로 길을 열어주기는 원하는 나의우상과 다름없이 믿고 갔던 제자들이 이제 성령을
받게 되고 왜 고난을 받아야 되는지를 알게 되였고 고난에 대한 해석을 받게 되여지니 십자가를 거꾸로지고 순교할수 있는데까지 베드로의 믿음도 성장을
했다.
고난은 성경적이다.
성경에서는 고난을 허락하여 주시고 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살지만은 고난을 좋아하는 자는
없다. 욥이 고난을 당할때에 고난이 당하는 것이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해도 남들보다 비교할수 없을만큼 믿음이 특심이 되여 열심이 잘 믿었고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였고 축복을
하셨는데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욥이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하나님을 한번 대면하여 만나서 내가 왜 이 고난을 받아야 되는지 한번 따져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만 하신다.욥은 거듭거듭 고난이 심해질수록 기도를 하게 되고
자기정체를 보게 되는데 하나님은 욥이 악어처럼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웬만큼 찔러서는 끔쩍도 아니하는 자기의로 꽉 찬 악어의 보습도 보게 하시고
하마처럼 꿀떡 굴떡 삼키고도 하나님의 은혜 받지 않은 것처럼 입싹닫고있는 그런근성을 보기까지 인도해가신다. 욥의
결국에 가서는 내가 가는 길은 그가 아시 나니 그가 단련 한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렇게 고백을 하는것이다.
그래서 고난을 참고 견디여 내는 가운데에 인격이
다듬어지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넘어가게 되여진다. 정금같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시키셔서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시는것이다. 고난은 풀무불같해서 우리의 체질을 녹여내고 우리의
육성을 녹여낸다. 고난에 고난을 겪고 가다보면은 인생의 해석도 점점 달라진다.고난을 당할 때 우리의 반응를 보면은 믿음의 경지를
알수 있다.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받아들이는 자세만 바꾸어도 엄청난 영적인 복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여지고 삶에 질이 달라진다. 고난의 이유를 모르겠으면 어찌하든 내가 당하고 있기에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나를 회게케 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다. 죄를 못 보겠으면 그냥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라, 그러면 점점 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죄를 보게 되고 만입이 있어도 할말이 없어지면서 나의 지은 죄보다 고난이 경한 것에 감사를 하고 감당하다 보니 하나님이
엄청난 영적 세계를 또 한번 열어주시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13~14절: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에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사야 50장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행하시고 주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신다고 말씀 하신다. 우리들이 주를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 볼 때에 이 고난이 변장된 축복으로 우리에게 열리게 되는 줄로 믿는다. 고난을 받으면 우리 안에 불순물이 빠진다. 나를 정결하게 한다. 깨끗해진다.처음부터 고난을 기쁨으로 받는 자는 없다.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받아야 되는가 불평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이 고난에는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전체를 하나님이 불러 주셨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이시지 감당치 못한 시험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죽을것만 같은 사건에도 묵묵히 기도하다가 보면은 감당할 힘도 주신다는 것이다.
고난중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인지를 확인이 되는 것이다. 15-16절: 그리스도를 주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항상 예비하되 예수의 사람임을 증명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선한 사람이 왜 좋은 꼴을 못보고 불신의 형제들에게 쓴 소리를 듣는가? 구원에 목적을 두지 않아서이다.구원이 목적인 사람은 언행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에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윤리 도덕적으로 착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여서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17절: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다. 죄악 된 속성으로 살지 아니하고 그속성을 십자가로 내려놓고 죽은자처럼 고난을 받을때에 이것이 하나님 역사하실수 있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니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 생활 오래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 모든 것이 내 소견대로 막히지 않고 형통하게 열릴것처럼 기복에 젖어서 신앙생활을 해오는데 정말 진리가운데 우리를 인도하는것은 신앙생활 하면할수록 우리는 십자가 밖에 길이 없다. 말씀 안에 살면 살수록 그끝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는 이 말은 세상적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말이다.오직 신성으로 가야 되는 길이다. 우리의 육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가야 되는,오직 부활의 생명으로만 주를 따라가야 하는 길이다. 그러니 세상과 상충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진절던덜 머리가 나도록 질긴 나의 이 육성을 알기 때문에 고난은 당연하다. 고난이
와서 내가 벗을수 없는 것을 벗게 하시고 내가 끊을수 없는 것을 끊어내게 도와주시여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하고 주의 합한자로 자로 변화되게 하시는것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을 통하여 구원을 간청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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