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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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김수강 20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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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리에는 있지만 모양은 있으나 실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중심이 없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습관적인 예배, 종교의식을 치르는 이런 예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모두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은혜는 굉장히 외치는데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가 없다는 증거는 삶속에서 죄를 이기는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은혜가 임하면 죄와 싸워 이기게 되고 그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길 수 있도록 주님의 영이 나와 함께 역사하실 수 있도록, 십자가의 도의 삶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구원 없는 능력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을 보길 원합니다.

칭찬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이고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순종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이 시간에 말씀에서 진리를 잊어버리는자가 되지말고 진리를 찾는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패턴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보면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그 주변 국가들을 막대기로 쓰셔서 전쟁을 하게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게 하든지 많은 어려움을 겼었습니다. 애굽도 쓰시고,,블레셋도 쓰시고,,앗수르,모압도 쓰시고 이러한 거대한 제국들을 통해서 고난을 주셨는데 그때 우상숭배와 패역한 것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 고난 가운데서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거짓선지자들의 외침이 이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회개의 메시지 보다는 위로의 메시지,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거짓 메시지에 속아서 돌이키지 못하고 엄청난 고난을 받고 멸망의 길을 갔고 혹독한 시련의 길을 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어떤가? 나의 영적 상태는 위기가 아닌가? 말씀을 비추어 봤을 때 내 스스로가 양심을 지으신 아버지 앞에 이 믿음의 신앙상태가 이대로 좋은지 점검해 봐야합니다.

 

영적 쓰나미가 사방에서 몰려오는게 오늘의 현실입니다.우주적으로 이슬람이 몰려오고 힐람의 환란의 문화가 지배되어지고 영적 재앙인 동성애, 미디어, 음란한 문화들이 상황속으로 현실이 되어지고 내면적으로도 우리 가운데 진정한 회개가 없는 양심에 화인을 맞는자 처럼 죄에 둔감한 그러면서도 자기정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그러면서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는데부터 시작하는 영적쓰나미를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건강한 심령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것 인줄 믿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보려고 하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자기를 신뢰할때는 하나님께서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나는 할 수 없다. 입이 뻣뻣하고 둔하다고 인정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하시고 나는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나를 부인하고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큰일을 행하실줄 믿습니다. 우리를 쓰실 줄 믿습니다.

 

15.네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살려는 순간부터 고난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칼날을 지닐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고난인데 미지근하다는 것은 타협을 하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타협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세상과 타협하고 교회에서는 신실한 신자처럼 그때마다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잘 적응도 하고 바꾸기도 하면 고난은 없습니다.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니 마음에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열정도 없고 그저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요한이서 12장에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게 되어지면 어두운 영이 세상에서 왔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 세상의 영으로 말미암아 혼돈이 되어져서 희석이 되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내안의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어집니다. 그래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토하여 내친다고 하십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원인은

 내가 거듭나지 못하고 종교의식으로 종교인이 되어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가지고 이 귀한 말씀이 생명나무에 열매가 되어지고 내안에 생명나무인 예수가 자라게 되어지는 아주 절대적인 절명의 시간을 생명 걸고 사수하면서 취할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리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는 구원에 대한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예배에 임해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앉아있는..성령이 없으니깐 은혜가 없으니깐.. 죄를 이길힘도 없으니깐..세상과 타협하다 오니깐,,영이 없이 오니깐,,영의 세계의 말씀이 너무 시간이 길고 지루하고 내가 앉을자리, 취할자리,분별이 안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구원을 받았는데 죄 가운데서 죄를 끊지 못한 상태로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겁니다. 영의 생활하고는 너무 멀어 영이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의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영의 말씀을 육의 귀로 듣고 영의 세계 공동체에 이루어지는 것을 육의 눈으로 보면서도 영과는 너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힘을 입어서 충전되어야 하는데 말씀과 기도로 성령을 힘입어 가야하는데 충전을 하지 않는것입니다. 기도가 되지 않아도 답답한 것도 없고 말씀이 안 들려도 갈급함이 없고,,,,영이 깨워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주의 인도를 안 받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으면,,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갑자기 갈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굉장히 답답하고 갈증이 나서 못 견딥니다. 그러면서 충전을 하게 되고 억지로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듣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코드가 다림줄을 놓힌것에 대한,, 자기 감정대로 헤메이다가 답답하고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기 원해서 애쓰는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또 세속적일 때 신앙이 미지근해집니다.

우리의 믿음의 육으로나 세속적으로 타협하게 될 때 타협하지 않을 때의 순수성을 지키게 되어지지 타협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미지근한 신앙이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주님께서 토해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왜 내안에 기쁨이 없지? 평안이 없지? 그러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속으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면서 찾다가 보면 회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데 어디서 미지근해졌는지..어디서 다운이 되었는지,,부지중에 몰라서 매복되어져서 점점 세상으로 어두움으로 가라 앉았던 것이,,막 답답해 못 견뎌던 것이,,,찾고 헤메이다 보면 꼭 하나님께서 이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계기가 열립니다. 그래서 한나절이 가면 안됩니다. 영적으로 쭉~ 잠자는자 되지 말고 미지근한 상태에서 수년을 그렇게 가는자 되지 말고 단시간도, 몇 분이라도 미지근한 상태가 될까 깨어있어야 회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지근한 상태를 준비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보다 믿음을 유지 하는게 더 힘이 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차든지 덥든지 해야 하는데 미지근해서 토해 내치고 싶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자기착각에 빠져있고 그래서 자기 정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의 여정 가운데 어떤 위치에 머물러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걸림돌이 되고 성령의 흐름 가운데 방해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 스스로가 부유해서 자기 믿음이 대단한줄 아는데 심판받을 것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은 알지 못한다. 얼마나 우리 영혼이 영적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곤고해 있는지,,,

영적으로 얼마나 불쌍한 상태로 있는지, 얼마나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빈약한지,, 눈이 멀어서 봐야 될 영적인 세계는 못보고 보지 말아야 할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 또 내가 말씀의 의의 옷을 입지 못해서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잘못된 신학개념으로 소경이면서 소경인줄 모르고 귀가 먹었으면서도 귀가 먹은 줄 모르고 메시지가 나의 생명으로 취함을 받지도 못하고 이것으로 인하여 식어진 열정도 불사르지 못하고 가면서 예배 한 땀 으로 위로받고 가는 이런 습관적인 미지근한자는 아닌지,, 인간의 본성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못 봅니다. 늘 자기에게는 후한점수, 정답이 자기 기준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지 않으면 자기정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베드로가 자기정체를 보게 되니깐 주님! 나를 떠나소서. 자기정체를 보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자기처럼 잘 믿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자기정체를 보니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주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를 떠나소서. 이렇게 십자가 앞에서 자기정체를 본 자만이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겁니다. 우리 심령의 문제를 말씀에 다름질로 정확하게 진단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으면 합니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의 부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 전서에 너희의 믿음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말씀과 구원을 아는 것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삶속에서 성경공부하고 제자훈련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믿음이 있는 것, 삶속에서 처절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싸워가면서 말씀이 응하여지고 이루어질 수 있는걸 가지고 삶속에서 말씀대로 부딫치고 연단을 받아가면서 믿음이 금과 같은 믿음으로,,우리 믿음이 시련과 도전속에서 강해지면서 말씀이 승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쳐서 복종한 십자가의 삶이 있는가? 이런 삶을 연단한 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본질로 돌아가서 예수의 심장이 우리의 심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기에 혈기도 부릴 수 있고 자기도 잠시 속아서 자기자랑도 할 수 있고 형제가 주님의 몸 된 지체인데 그 지체를 증오하고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면 돌아서서 회개합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거짓증거하고 비판한 것 때문에 양심에 찔림을 받아서 잠도 못자고 괴롭습니다. 회개합니다.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써 지녀야 할 지체가 직분을 가졌고 말씀을 들었고 누구보다 신앙에 푯대가 되어야 할 지체가,,,신앙의 진수를 보여줘야 할 지체가,,말씀이 생명이라는걸 증거 할 지체가,,해서는 안 될 행동과 말로 그 직분이 무색할 정도로 자기가 받은 분깃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런 소리를 듣고 목격할 때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실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만나면 변화될 줄 믿습니다. 우리를 변화게 하실 분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 이시기에 예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지고 예수만이 우리의 비젼이 되어질 줄 믿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수록 아이니컬한 것은 세상에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못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똑바로 믿고 있는지 잘못 믿고 있는지 내가 옳다고 해야 옳은게 아니라 주님이 옳다고 하셔야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멀고 벌거벗은 것은 아닌지 바로 보고 분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옷은 성결, 순결한 것입니다. 계시록이 있어서 주님의 재림을,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키워드는 우리가 성결하게 흰옷을 사서 입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행실이 세마포라고 했는데 우리들의 옷을 행실입니다. 우리들의 행실이 선한행실이 되어져서 흰옷으로 짜여 지는 역사, 한올 한올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베가 짜여 져서 이것으로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짜여 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순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우리가 순종하고 감당하고 순결하게 하는 것이 흰옷을 준비하게 되어 지는 것이고 우리가 불순종할 때 우리 옷이 더렵혀 지는 것이고 불순종이 거듭 거듭해지면 옷이 낡아져서 벌거벗은 벌거숭이가 되어 지는 겁니다.

매순간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우리의 선한 행실인 흰옷을 준비되어지는 자가 되는가? 아니면 흰옷을 더럽히는 자가 되는가? 이제부터라도 나와 동행하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준비할 수 있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서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8)

말씀이 생명이 되어져서 심령 가운데 피가 되고 살이 되어지면 영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어 알게 되어질 줄 믿습니다. 눈을 밝게 하는 것은 말씀밖에 없고 말씀이 내게 생명으로 주어지면 분별력도 생기게 되고 봐야할 것을 보게 되어지는 영적인 모든 시각도 열리게 되어집니다. 말씀 없는 자기 열심, 말씀 없는 기도는 기복에 젖어서 세상 것과 합리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더디게 내려온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를 애굽으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열심, 자기 하나님을 만들어내는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뜻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빌고 빌면 나의 기복을 다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으로 빚어내는 내가 아닌가? 말씀 없는 열심 말고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고 듣고 상고하면서 말씀이 삶속에서 응하여지고 이루어 질수 있도록 바로 알고 가기를 원합니다.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내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돌이킬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 기회가 있을 때에는 끊임없이 책망해서 나를 돌이키게 해 주시는데 포기하실때에는 나는 버려진 자가 되지 않을까?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는 겁니다. 미지근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신부로 준비시키기 위해서 징계로 채찍으로 찾아오셔서 내 소견대로 내 마음대로 살도록 두지 않으시고,, 용광로 속에 나를 집어 넣고 환란을 통하여 내가 깨닫기를 원하고 더러운 옷을 벗기를 원하고 인생에 환란을 쌓는자 되지 말게 해 달라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내 놓을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칭찬받는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빌라델피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합니다. 책망만 받은 사데 교회는 책망만 받은 것 같아도 흰옷 입는 몇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있었다고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시면서 살아나기를,,깨어나기를 원하시는데 귀한 말씀을 받고도 미지근한 진단을 받고도 말씀이 아닌 것 처럼 흘려 떠나 보내는 자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계시록에 모든 메시지가 이기는 신앙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보면 징계 속에 다룸 없는 사랑이 없고 고난없는 사랑이 없습니다. 너무 사랑하시기에 용광로 같은 징계를 주셔서 징계 속에 은혜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징계와 은혜는 =가 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선한싸움을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날마다 자신을 쳐서 비우고 십자가로 갈 때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물질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타락하고 배도하는 자가 아니라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아름답게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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