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열쇠 | 구인희 | 2016-1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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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진실하신 - 주님의 성품으로 나타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적은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고 한다. 우리는 돈이 있어야 주의 일하고 건강해야 충성하고 형편이 되야 구제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할수 없는데 하면서 내 말을 지켰도다 하는 것으로 칭찬을 받았던 교회이다. 대지진이 수차례 일어남으로 모든 건물이 훼파되고 내부에서는 생활고에 쪼들리게 되어지고 외부에서는 유대인들의 압박을 받으면서 고난에 고난을 겹쳐 살소망이 전혀 없어보이는 곳이다. 그런데도 적은 능력으로 내 말을 지켰도다는 것은 그안에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원했고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기를 원했고 삶속에서는 정직하고 진실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의 성품으로 나타나신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에, 하나님의 평가하심에,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아멘되는 자가 가장 겸손한 자이다.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강단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지체와 가족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아멘이 안되는 것은 내가 교만하다는 것이고 우리의 뼈속에 피속에 세포속에도 검은제 밖에 없는, 하나님이 없이는 소망이 없는 선한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오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우리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빌라델비아 원어의 뜻은 형제사랑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받아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섬길때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교회가 됬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 말씀하신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이야기 하신다. 열쇠를 가진자는 권세를 가진 주권자이다. 내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졌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집안의 권세는 열쇠가진자가 갖고 있다. 다윗의 장막의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것이요 라고 이사야 16장 5절에 말씀하시면서 그 위에 앉을자 다윗의 열쇠를 가질자에게는 늘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셔서 주님의 정직한 영으로 함께 할때에 정직하고 진실한 판결을 하게 하여 주시고 정의를 구하게 하시고 공의를 신속하게 행하게 하여 주실수 있는 이런자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문이라는 말에서 열쇠가 파생됬기 때문에 열쇠와 문은 동의어로 연결이 되어진다. 계시록 4장에도 보면 열린문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열린문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다. 열린문을 주님께서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다. 내가 문인데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 천국에 들어가기 원해서는 분명히 우리가 통과 해야될 문이 있는데 이 문이 그리스도의 문이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문이라는 것이다. 문을 들어가기 원해서는 천하의 구원을 받게끔 이름을 주신것이 예수의 이름밖에 없다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의 이름외에는 구원을 받을수도 없고 이룰수도 없다. 예수님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아버지앞에 갈수없다는 진리를 하나님께서 선포하게 하여 주셨는데 이 열린문이 예수라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 칭찬받았던 행위> 첫 번째 믿음을 지켰다 믿음은 힘든 상황가운데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볼수 있는 어떤한 상황가운데에서도 요동하지 아니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신것이라고 믿고 환경을 묵묵히 견뎌내고 이겨낼수 있는 이 믿음을 지켰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외부의 핍박을 견디어 냈다. 우리가 믿음의 길 가는데 어려움을 당케 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의로운, 자기들보다 믿음 더 좋은 사람 없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현대판 유대인들 날마다 성경가지고 나오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핍박을 견디어냈다. 나는 오직 예수면 됩니다라는 고백으로 겸손하게 믿음을 지키는 자인가? 아니면 자칭 스스로 의로운 유대인이 되어져 믿는자들을 핍박하고 무시하지는 않는가? 빌라델비아 교회에 속했다고 다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게끔 막대기 노릇하는 유대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책망이 없었던 것은 이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약함을 늘 인정을 했고 어려운 상황을 탓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자기 육을 쳤고 이랬기 때문에 주님이 책망할것이 없이 위로하고 격려할것 밖에 없는 것이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 능력이 적은 교회>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그리도만이 유일한 우리의 구원의 문이라고 이야기할때에 변명이 많을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거쳐할곳이 없는 위기 가운데에 방황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어떤상황이라도 적은능력을 가지고도 네가 내 말을 지켰도다. 칭찬받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변명하지 않는 상황까지 갔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변명할것이 합리화할것이 참 많다. 우리의 인생가운데 어떠한 상황이든지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상황가운데에 합리화하거나 변명이 떠나가기를 원한다. 무기력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한다. 믿음의 고백을 붙들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에서도 나오는 것이 예수의 거룩함이 나올수 있는 어떤한 경우에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끝까지 견뎌낼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다윗의 열쇠 - 열린문> 내앞에 열면 닫을수 없는 열린문을 두시겠다는 것이다. 언제 관계가 열리고 언제 환경이 열리는 줄 아는가? 눈물로 회개할 때 열린문을 앞에 두신다. 우리들 앞에 모든 환경의 문제나 구원의 문이나 인관관계나 모든 문이 열리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타협하지 아니하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서 끈임없이 벼텨나가는 이런자에게 닫혔던 것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를 보고 하나님없이 살수 없다는 고백을 수없이 하는 것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할수 있는 것이고 다윗의 열쇠를 받을수 있는 준비를 하는 자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보고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했다. 열조의 죄악부터 자기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어떤한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다윗의 사적에 원망했다는 말이 없다. 모두가 원수같이 자기를 조롱하고 배반해도 그럴수록 회개하고 모든 죄를 자기의 죄로 끌어안은 다윗에게 열쇠를 주셨다. 열린문을 두셨다는 것이다. 구원을 이루고 영혼을 살리는 복음이 열린문인데 죄로 인해서 문이 닫히지 아니하도록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닫힌문을 열기원해서 오늘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닫힌문, 인간관계에 닫힌문, 환경에 닫힌문 이 모든문을 열어주시기 원하셔서 거룩한 분으로 찾아와주셔서 어두움을 보고 회개하고 깨닫기를 원하시고 정직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찾아와 주셔서 우리들의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을 보고 회개하고 깨닫게 하여 주시고 이 모든 것으로 닫힌문을 열수 있는, 다윗의 열쇠를 받으려면 모든 문제를 내것으로 끌어안고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이 거듭나고 생명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방문을 받아서 하나님과 교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삶을 살아갈때에 원수들이 내 발앞에 와서 무릎꿇게 되는 내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자라는 것을 알린다고 약속을 하여 주신다. 우리들의 심령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구나 증거를 삶속에서 가질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거듭나게 하여 주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나를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눈물의 간증이 우리들에게는 다윗의 열쇠가 되어져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주께로 이끌어 올수있는 다윗의 열쇠가 있기를 원합니다. 다윗의 열쇠는 모든 것을 여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막혔던 모든 것들을 여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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