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다 하나 죽은자 | 구인희 | 2016-12-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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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있지만 누가봐도 구원을 받은 사람인것 같고 예배자리에 같이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있는데 전혀 구원과 예수님과 상관없이 앉아있는 자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내게 구원받은 열매가 있는가? 내가 예배자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것에 대한 예배의 감격이 있고 어떤 말씀으로 구원의 세계를 열어주시고 나를 정결케 하실것인가 기대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가? 내게 구원의 확신이 있고 매순간 나를 붙들고 가시고 인도해가시는 주님의 성령의 손길에 감사하고 있는가? 살아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 삶속에서 악성이 뽑히면서 세포 마디마디 속에 들어있는 끈질긴 육성이 하나하나 녹아지면서 구원의 세계에 가까이 갈수록 심판대에 가까이 갈수록 변화가 있는가? 예배를 통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날때에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면서 삶속에서 날마다 거듭나며 살아나는 증거가 있는가? 그리하여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고백이 있는가? 날마다 나를 쳐서 주님의 말씀앞에 복종하기 원하여 기도하면서 몸부림치고 있는가? 주님의 은혜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원치않는 일을 감당하고 하고싶지 않은 일을 감당하고 있으면서 하고싶은 것, 가지고 싶은것을 포기하면서 육은 포기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구원의 표징이 우리들의 삶속에 있는가?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메시지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말씀앞에서 내 생각과 의지를 꺽어내면서 성령님이 내인생의 주인되시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지신 그분의 인도함 따라서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인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게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것이 아니라 당연히 예수를 믿고 주의 길을 가는 주님의 사람이라면 순종하고 이끌어 가야 되는데 내 삶속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가고 있는가?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주의 이름으로 부르심앞에 쓰임을 받으면서 내의가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부인이 되면서 생색없이 공로없이 순종하며 겸손함으로 말없이 갈수 있는가? 실상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 하는 사데교회에 하시는 말씀에 비취어서 우리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는 냉철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테레사수녀는 12살때부터 구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줬고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해서 인도에서 헐벗고 가난한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하다가 1997년에 죽었다. 그런데 죽기전에 자신의 고뇌를 기록한 편지의 내용중에 내 마음깊은 곳에 공허함이 가득하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용서해주셨으면 좋겠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 평생에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큼 일생에 구제의 삶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본적이 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해보지 못한 테레사 수녀였다는 것이다. 심령가운데 단재된 공허가 날카로운 칼로 영혼을 찔러 대는것 같은 아픔을 겪는다. 과연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신앙과 사랑도 열심도 없이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가? 하나님이 없다면 영혼도 없고 영혼이 없다면 예수도 진리가 아니다 이렇게 자신의 고뇌를 기록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을때 그가 한말은 내가 천국에 다른 것으로 못간다면 이 지명도에 의해서 가게 될것이다. 노벨평화상은 나를 순결하게 해줬고 희생하게 해줬 천국에 가도록 준비시켜줬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행위에 밀착된 자기의 명성과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갈꺼라는 확신의 생각.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돼서 가는 하늘 나라를 자기 노력 헌신 인기 때문에 천국간다고 생각했던 테레사 수녀가 과연 천국에 갔을까? 산의 정상에 올라 가는 길은 여러길이 있지만 구원의 길도 모든 종교안에 있다고 종교다원주의를 외쳤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성경은 말씀하신다. 천하의 예수외에는 구원을 줄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의 평가에 의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것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교리인지 우리자신들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돌아보게 하여 주신다. 몸을 불살라 죽도록 충성한다고 천국에 가는가? 그것 때문에 천국간다고 위로받고 힘을 얻고 있는가? 나는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돌아봐야 된다.
나는 예배드렸다고 스스로 자족하면서 위로받는자 이런 의미없이 예배에 왔다 돌아가는 자라면 죽은자이다. 교회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곱영이신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말씀을 듣는 우리가운데 기름부음이 있기를 원하시고 일곱별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양심을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사람은 구제로 헌신으로 몸을 불살라 충성할수 있다. 테레사 수녀처럼 모든 사람이 칭송하고 그 사람의 행위를 봤을때 천국에 갔을것이라고 질문을 통해 70%이상이 인정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때에는 다를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만났고 예수가 누군지 안다면 우리의 구원주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앞에 싸울수 없고 원망하고 불평할수 없다. 가짜들이기 때문에 상처받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믿기는 하는데 말씀대로 살지않는 가짜들이 왕노릇하는 이런 심령들을 향해서 오늘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자로다 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소리인가?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예수를 정녕 모른다. 예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예배자로 주님의 전전앞에 서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수 있다는 것을 일곱영으로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 정말 소망없는 메시지 같지만 그러나 깨어나라 하시면서 소망의 메시지를 던지시고 계신다. 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해야 된다. 죽는 그날까지 가짜로 가지말고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라는 말씀으로 외치시고 계신다. 나는 진짜인가 아니면 유사 그리스도인인가? 진정성있는 믿는 사람으로서 행색을 갖추고 있지만 유사그리스도인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앞에 예배자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들러리로 앉아있을수 있다는 것을 더 늦기전에 생각해야된다. 율법학자들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활은 구제와 기도와 음식으로 일괄됬다. 경건 그 자체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신앙의 모델이였다. 세상 사람들이 지옥을 가더라도 그 사람들만은 천국갈것같은 구별된 사람이였다.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 회칠한 무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평판과 실제의 모습이 같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땅과 하늘의 평판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의 평판보다 중요한것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이다.
사데교회는 회복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일곱교회중에 가장 성적이 좋지 아니하는 칭찬이 한마디도 없는 사데교회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어갈수록 실망할것 밖에 없는 행위에 온전한 것을 찾아볼수가 없다고 하신 메세지지만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한가닥의 소망을 두고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만난다. 사데교회의 배경은 전략적인 요충지였고 수직암벽위에 세워진 누구라도 함부로 공격할수 없고 침공할수 없는 도시전체가 난공불락의 요새화된 도시이다. 강에 통해 흘러내려오는 사금을 채취해서 엄청난 부를 축척해서 번영을 누리는 도시였다. 그러니 맘몬신이 있으면 맘몬으로 말미암아 즐기는 것들이 따라오는데 사치와 부도덕과 방종이 생활가운데 방탕의 표상이 될수 있을정도로 세상의 문물이 가득했다.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사데교회는 활기차고 부유하고 강했다.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의 큰일은 다 맡아하고 예배는 철처하게 잘 드리고 세상것을 다 누리고 베푸니까 누가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데교회에 말씀하시는 분은 일곱영을 가지시고 일곱별을 가지신 분이다. 사람은 속일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수 없다. 진정한 교회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는 교회이다. 성령이 운행하시고 역사하시고 있는 교회이다. 일곱이라는 완전수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곱영과 일곱별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찾아오셔서 내가 네 행위를다 아노니 - 주님은 다 아신다는 것이다. 내마음의 중심이 어떤지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자기사욕과 욕심을 쫓아 행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는 우리자신을 모를지라도 주님은 우리마음의 동기까지 뼈속깊이에 있는 쓴뿌리까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을 속일수가 없다. 오늘 우리들도 너무 오랬동안 신앙생활 하다보니 메너리즘에 빠져서 구원은 내것으로 취하고 스스로 살아있다고 스스로 믿음있다고 스스로 의롭다고 믿음 좋은 성도인척 하지만 헌신 봉사 연보 선교의 행위를 보고 만인들이 너를 살았다하지만 실상은 죽은자야 이렇게 말씀하실수 있다는 것이다. 죽어있는 사데교회에 왜 주님이 나타나셨을까? 깨우시고 살리시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잘믿고 간다고 교만한 우리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에 율법의 자유함을 주셨는데 자유함을 방종하여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가는 우리들에게 왜 사데교회에 책망의 말씀을 들고 오늘 우리를 찾아오셨을까? 야고보서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살아있다는 증거를 가질수 있을만한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지만 행함으로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인정하는데 왜 죽은 교회라고 하셨을까? 삶속에 말씀대로 산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땅에 풍족한 삶에 예수가 필요치 않을 만큼 너무나 안전하고 평화롭다보니 예수믿는 이유가 없을만큼 여유만만해지는 것이다. 고난이 없는 것이 얼마나 큰 함정인지를 알아야 된다. 영이 죽어있어도 감각이 없는 감각없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이런사람처럼 위험사람 불쌍한사람은 없는 것이다. 한치앞을 예비하지 못하고 영적교만에 싸여 자기죄를 인정할줄모르고 회개할줄 모르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영적 무기력증에서 잠자고 있는것 이것을 오늘 죽어있는 자라고 표현을 한다.
죽은자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처방하시는데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된것을 굳게하라.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신다. 감동도 감격도 없는 무디어질대로 무디어진 잠들어진 상태에 깨어나라고 하신다. 일어나라고 하신다. 지옥갈자가 천국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회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개의 영을 주시기 원하여 고난으로 병으로 찾아와 주시고 내가 망한것이 무너진것이 저주인것 같지만 이것이 축복인것은 회개가 터지고 막힌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만져주심이 되기 때문에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고 감사이다. 왜냐면 이런 고난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성찰하여 볼수 있고 회개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 주시는 처방 오직 회개하라고 일어나라고 깨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앞에 이것이 능력이 되어져서 변화의 길을 갈수 있는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는 주님을 따라 순종할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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