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 구인희 | 2016-1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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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지역의 배경>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고 하셨다. 세상의 많고 많은 신들이 있지만 돈에 대한 배후의 신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느니라”라고 하신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냐면 신앙생활의 가장 위협적이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 아니면 해결이 안되는 돈이면 다 해결될것 같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돈을 경계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생명과도 바꿀수 있을만큼 돈은 매혹적이고 미혹적이고 돈앞에 안넘어 갈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찾아와 주셨다. 두아디라는 향기로운 재물이라는 뜻이다. 찌르면 찌를수록 향기가 나와야 되는데 향기를 포장하는 것은 속내를 숨기기 원하여 포장하는 것이다. 두아디라는 군사적인 요청지이다. 주변국가가 길드산업을 통해서 형성된 길을 통하는데 이 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전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침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역의 위치를 갖고 있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당하다가 결국은 주전190년에 로마에 점령이 되어 로마의 속국이 되어졌다. 정치 종교가 너무 불안전하기 때문에 굳게 최선을 다한것이 경제적인 수출을 하게 되었다. 상업이 발달되어 무역이 왕성했다. 제조업이 번성하고 상업이 발달되다 보니 자연적으로 따르는것이 돈이 따르게 된다. 상호협동조합의 경제형태를 가진 조직인 길드가 발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황제가 신이다하는 무리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주다 하고 회심해서 오는 무리들이 그 문화속에서 견딜수 없는 박해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우상숭배에 관련된 압력이 알게모르게 신앙생활하는데 걸림돌되어지고 위협적인 것이 되어졌다. 상업이나 공업도시가 발달한곳은 장르별로 수호신이 있다. 수호신을 섬기는 조합에서 제사장들이 따르게 되어지고 무당들이 따르게 되어지고 사업이 번성케 되기 원해서 신을 섬기고 있는 이 때에 길드조합에 역사에 발맞춰 우상을 숭배하는 축제가 이어졋다. 그때그때마다 우상의 제단에 재물로 드려지면서 카니발이 성행하여 지는 역사가운데 굉장히 작은 도시지만 상업공업이 번창해서 번창에 뒤따르는 음란과 부패가 넘쳐나는 곳이 두아디라 교회이다. 돈이 있다보니 자동적으로 따르는 음란과 부패가 넘쳐나는 두아디라교회에 가장 큰 편지를 쓰면서 가장 힘든 편지를 갖고 오신다. 행위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신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에는 최고의 로마의 신인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를 섬기는 황제숭배가 성행했다. 세상의 돈이면 다다, 학문이면 다다, 권세면 다다 라는것으로 세상것에 치중해져 있는 곳에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가 다다 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다다 는 모습으로 처음으로 일곱교회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로 나타나시는데 불꽃같은 눈으로 내가 네 심령을 다 파악하고 있다. 내게 네 행위를 안다는 말씀으로 찾아오신다. 불꽃같은 눈으로 찾아 오셨다는 것은 심판이 전재되어있고 심판을 통한 구원이 전재되어 있다.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였다. 빛난 주석은 권세를 가르키는데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두아디라교회를 찾아와 주셨다. 여러 가지 신체부분이 있는데 왜 눈과 발로 주님의 모습을 강조했을까? 불꽃같은 눈으로 양심을 들여다 보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들을 감찰하고 계시고 우리교회를 주장하고 계신다. 우주적인 심판주이시지만 나의 내면의 세계를 심판하시고 나를 건져내주시는 내 생각과 마음을 살펴주시는 나도 모르는 내안의 죄악의 근성 세포마디마디마다 머리카락 하나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장부를 지으셨기 때문에 나의 조직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는 하나님. 내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것인지를 분석하고 계시는 하나님. 이것을 불꽃같은 눈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비유하셨다. 때마다 시마다 말씀으로 찾아와주셔서 우리도 모르는 중에 빠져있는 죄의 속성들을 감찰해주시고 드러내주시고 심판해주시는 것을 보게 되어진다.
<두아디라 교회의 빛 루디아> 두아디라 교회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해 있다. 빛에 해당된다고 생각할수 있는 것이 두아디라 교회의 출신인 루디아를 생각할수 있다. 바울이 환상을 보고 성령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갔을때에 첫 섬 빌립보를 도착하게 된다. 빌립보를 가서 언어도 문화도 틀린데 성령의 인도함만 받아서 왔는데 거기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게 된다. 어디가든지 디아스포라들이있어서 그들만이 모여서 드리는 회당이 있었는데 여기는 유대인들이 없기 때문에 회당도 없는 것이다. 예배를 드릴려고 해도 회당이 없어 못드리는 가운데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교제하는가운데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드리게 된다. 그리고 자기집으로 바울을 모셔가서 세례를 받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해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 두아디라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네 사업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는 것이다. 네 행위에 대해서 믿음의 신앙안에 뜻대로 살려고 하는 빛으로 회당이 되어지는 루디아의 신앙심을 가진 선한 마음을 가진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첫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와는 달리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이 점점 더 좋아져서 하나님보시기에 처음 행위보다 나중행위가 더 많도다 라는 칭함을 받게 되어진다. 아무리 내 환경이 어렵다하더라도 변하지 아니하고 요동하지 아니하고 주를 향한 섬김으로 인내하고 있으면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안디바를 기억해 주시듯이 오늘 우리들을 기억해주신다. 삶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돌아보기를 원한다. 나의 삶을 주관하는 나의 힘이 되고 위력이되는 것이 돈인지 주님이신지 누구에게 내 사랑과 믿음을 바치고 있는지 분별해 보길 원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어두움 이세벨> 빛의 반열에서는 루디아가 들어갔는데 어두움에 반열에서 책망할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세벨과 같은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지자라고 자처한다고 하였다. 한 여인의 꾀에 넘어가서 그의 가르침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 가르침에 다 미혹되어 넘어간다는 것이다. 열왕기상에 보면 시돈땅의 왕의 딸로서 이스라엘 7대 아합왕과 결혼한 이세벨이 나온다. 이세벨이 자기의 고향에서 자기가 섬기던 바일신을 데리고 시집을 온다. 그래서 남편 아합을 미혹시켜 여호와를 섬기던 선지가 850명을 미혹해서 타락하게 만든다. 850명의 바알선지자 거짓 선지자들이 이세벨의 상에서 음식을 같이 먹었다고 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가르침에 다 미혹되서 넘어갔다는 소리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리를 교란케 하는 진리를 비진리로 합리화해서 변질시키는 이런 속성을 이세벨에게 은유적으로 비유를 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 다고 해도 믿음의 끝이 예수가 되어야 되는데 믿음의 끝이 돈이 되어지고 자식이 되어지고 가족이 되어지는 이런 표적을 좇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는 없으면서 기복과 성공복음에 젖어 병고치기를 원하고 물질축복 받기를 원하고 세상의영광과 권세가 있기를 원하는 표적을 하나님앞에 자꾸 구하니까 하나님께서 너희가 지금 이런 표적을 구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다. 죽어라 그러면 3일만에 내가 부활시킬게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진리가운데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감당할수 있는 부활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줄게 이것이 주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표적이고 우리가 받고자 하는 표적은 이것이 아니다. 병고침 받고 물질축복 받고 하늘문이 열려 내가 원하는 보화들이 떨어지기를 원하는 표적을 구한다. 그런데 두아디라교회에 자칭 선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자칭 선지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아니고 스스로 높아져서 스스로 선생이 되고 스스로 사역자가 되고 스스로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세벨이 주의 종을 유혹했다고 하였다. 성공복음과 기복사상으로 뇌물과 타협을 하게 했다
<이세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이교도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열왕기상 18절에보면 갈멜산 대결을 보게 되어진다. 갈멜산에 가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과 여호와를 섬기를 엘리야가 대결을 붙게 되어진다. 그때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단위에 올려놓고 단주위에서 뛰놀더라고 한다. 그리고 큰소리를 지르면서 자기몸을 자해하면서 진행을 하고 있다. 왜 이세벨의 가르침을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아합과 이세벨을 비유해서 정체를 드러내셨을까? 오늘 우리들이 이 예배를 잔치로 생각한다. 죄인된 우리들에게 나의 만족 나의 기쁨을 주는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는 것이 예배이다. 내귀에 듣기 좋고 내 주관대로 기준에 맞춰 드려지길 원하는 예배는 나의 만족이고 나를 위한 축제를 하기 원하는 이것이 이세벨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배시간은 내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것이다. 에배시간을 나를 만족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이것을 이세벨의 교훈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교회를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드리는 것이지 내가 위로받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통해서 각을 떠서 온전히 내가 제물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채워져서 생명의 세계 변화의 세계로 가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예배가 회중의 비유를 맞추기 원하는 예배는 송아지 우상숭배이다. 우리들의 귀에 듣기 좋고 만족할만한 설교를 기대하지 말고 날선 검처럼 빛난 주석처럼 찾아와 주셔서 내 신부를 갈기갈기 도려서 잘라내주시고 수술해주시고 고쳐주시고 하나님만이 주인공이 되시고 한주동안 걸레같은 지저분한 더러운 옷을 벗겨주시고 나의 원망과 불평과 비방과 거짓과 욕심과 탐심의 더러운 옷들을 벗겨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예복을 입혀주시고 신부의 자격을 입게 해주시는 것이 진정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것이다. 예수가 없으면 이교도적인 가르침에 미혹될수밖에 없다. 종교행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자기의로 자기목적을 위하여 자기의를 쌓는 이런 사람이 이세벨의 가르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세벨은 주의 종들을 미혹시켰다. 창조주 하나님 영벌에서 영생으로 구원시켜 주신 하나님 이땅에서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시는 이 뜻을 벗어나서 바일신을 섬기는 것이다 돈많이 버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알고 돈을 통하여 누리는 아세라신을 섬기면서 이것이 최고의 축복인인 것으로 아는 성공복음과 기복사상의 푯대가 되어지는 모델로 들어가는 것이 이세벨의 가르침이다.
빛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본질상 어두움이기 때문에 어두움을 알게 된다. 아직 빛을 못만났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어두움의 권세아래 사단의 권좌에 앉아서 왕노릇하고 있는지 자기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분해서 펄펄 뛰면서 온갖 거짓말과 술수를 행하는 것이 자칭 이세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세를 주시고 음부의 권세를 이길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이세벨의 영을 쳐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격을 주시면서 루디아와 같이 교회를 세우는 조력자가 되게 해주시고 성령의 도구가 되게해주실줄 믿습니다. 이름날만한 것이 없는것 같은 자주장사가 이천년이 넘도록 그 이름이 끝임없이 기념되고 있다. 끊임없이 기념받을수 있는 “내가 너를 알아 네 수고를 알고 네 행위를 알아 네가 견뎌낸것도 알고 어려운 상황가운데 내 이름 굳게 잡고 간 네 신앙을 세상은 몰라주도 내가 너를 알아” 이런자가 우리가운데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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