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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이루시는 주님 구인희 20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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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오시는 주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 구약시대를 거쳐 오신 주님을 증거하게 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인류역사가운데 시대시대따라 이루어졌고 우리 인생전체에서도 이렇게 이루어졌다.

예수가 없던 우리들에게 예수가 오실것에 대한 증거를 받던 가운데에 어느때에 말씀으로 임하셔서 오신 예수를 증거하게 되어지고 다시오실 예수, 이젠 완전히 거듭나고 변화받아 나의 심중가운데 더 이상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가 사시는 세계 이런세계를 증거할수 있는 구원의 스토리가 우리의 인생역사 전체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역사도 구원을 이루기 위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말씀이 이루어지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말씀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고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을수가 없다.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 어긋나는 길이고 세상길로 가는 길이고 멸망의 길이고 패역의 길이다.

 

47절) 열둘중에 하나인 유다의 검과 몽치

예수님께서 열둘의 제자를 택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셨다. 우리를 많은 식구들중에 특별히 택하셔서 믿음을 불어넣으시고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셔서 우리들의 가문을 회복시키고 구원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제자들을 택하시고 양육을 하시는데 유다의 배반에 대해서 이야기 하신다. 유다는 자신의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예수를 팔아넘기는 것이다.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상당히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들의 심령가운데 악한영이 틈을 타고 들어오면 불신하고 원망하고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는지 모른다.

유다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제자로 3년반 동안 양육을 받은 자이다. 예수공동체의 살림을 맡은 큰 직책을 맡은자로 실신한 자처럼 보였다. 그 섬김과 봉사는 외적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보였다. 사람이 볼때는 그 믿음이 대단한것 같고 너무나 아름다운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때는 하나님을 팔아버릴려고 계책을 꾸미는자 이런자되지 아니하도록 이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건져내시기를 원한다.

가룟유다가 드렸던 수없는 예배와 양육과 헌신과 섬김의 열매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남을 잡아죽이는 검과 몽치를 가지고 등장한다. 일 많이 하는 사람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있다. 일을 통하여서 나를 다듬어 가시고 하나님의 날이 되게 하여주신것이 축복이고 은혜인데 쓰임받은것 갖고 먼저 일했다는 것으로 먼저 경험했다는 것으로 검과 몽치를 가지고 죽이는자리에 들어간다.

 

48절) 가식적으로 다가오는 유다에게 말씀대로 이루시는 주님

유다는 존경과 사랑의 표시인 입맞춤으로 위선적인 행동으로 배신과 체포의 시도를 삼는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이 얼마나 위선과 거짓의 신앙인지를 유다의 속성을 통해 보게 하신다. 주님이 묵묵히 받아주셨다고 해서 내가 진실된 것이 아니다.

가식적으로 다가온 유다를 묵묵히 받아주셨던 것은 말씀대로 이루시는 보내신 이의 뜻을 진행하시는 것이지만 유다를 향한 주님의 심장은 하필이면 왜 너냐, 너가 아니라도 나는 인류의 죄대속물로 십자가를 질텐데 하필이면 너냐, 3년반동안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주고 구원의 통로가 되기를 그리도 원했는데 네가 나지 않았으면 좋을뻔한 자리에 들어가냐, 복과 저주가 너한테 놓였지만 복의 세계가 너한테 열렸다는 것을 들어서 아는데 네가 어찌 저주의 자리에 들어갈수가 있느냐

유다의 가증함과 교활함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치밀함으로 접근을 했지만 주님께서 무기력하게 체포를 당하는 것 같고 아무 힘이 없는것 같고 지금까지 전한 메시지의 능력과 엄위가 무색할만큼 속임을당한것 같지만 주님께서는 성경을 이루시기 원하여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구원이 이루어지기 원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감당하고 가시는 것처럼 우리의 삶속에 진행되는 모든 인생중에 나타나는 모든 사건과 문제는 구원을 이루기 원해서 찾아오기 때문에 어느것 하나 ‘아니요’가 없다는것이다.

우리가 해야될 사명은 말씀이 이루어지기 원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원해서는 묵묵히 순종하고 감당하고 가는길만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길이라는 것이다.

 

50절) 친구여라는 말에 속지 말아라

너무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유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친구여”라고 한다.

이 소리에 속지 말아라. 여기서 친구라는 원어는 함께 동행하는 친구가 아니다. 거리가있는 경계의 대상에서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죽이려고 자신을 파는 자에게는 친구라고 했는데 다버릴지라도 내가 주를 따르겠다고 하는 베드로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주님의 사역을 오른팔 왼팔 수족이 되어 애쓰고 힘쓰는 요한과 야고보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죄를 보고 책망을 받을만한 사람들에게는 책망도 하시고 욕도 하시고 징계도 하시지만 유다에게는 한번도 욕한적이 없으시고 위선적인 그에게 누가봐도 속을수밖에 없는 친구여라고 하신다. 여기에 속지말기를 원한다. 내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할말못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의롭고 거룩해서 할말을 못하는 것이아니라 높아질대로 높아져서 할말을 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교양있게 긴장하며 말한마디도 조심스럽게 나를 대한다면 내가 대우를 받을만한 사람이라서 대우를 하는것이 아니라 편하게 대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믿음의 수준이고 성격이기 때문에 벽이 있다는 증거이다.

 

51절) 구원의 세계는 검과 몽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여 순순히 붙잡혔다. 열두영이 더 되는 군단을 내려다가 전멸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보내신이의 뜻을 행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인류의 대속물로 들어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묵묵히 그길을 가신다. 그런데 의분을 참지못했던 누구보다도 주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던 베드로가 검을빼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구원의 세계는 검과 몽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주님이 가야될 구속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 다버리고 열심히 주의 일을 한것 같지만 구원의 길을 막는것 밖에 한것이 없다. 늘 주님보다 앞서 행하고 주님의 길 가로막고 훼방하는 일 밖에 한것이 없다.

이런 베드로를 보고 주님은 나와 같이 원수와 싸워줄수 있는 자라고 좋아하지 않으시고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신다.

주님도 그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면서 세상나라를 사랑으로 희생으로 헌신으로 죽으심으로 정복했듯이 세상나라는 검과 몽치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참아주고 죽어지고 속아주고 녹아주면서 가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그 귀를 고쳐주셨다. 우리는 날마다 실수하고 잘못된 길을 열어도 주님은 따라다니면서 해결해주시고 위로해주신다. 끝까지 고난을 인내하시고 죽기까지 참아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돌봐주시고 실수를 커버해주시고 끊임없이 돌봄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신다. 이것으로 구원의 세계를 열고 가셨고 보여주셨다.

아무리 감당하기 힘들지라도 순종해서 십자가 지는 것이 우리가 해야될 적용이고 우리가 가야될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벗겨져야될 정복해야될 죄악의 땅 가나안 속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칼이 있어도 쓰지 말아야 된다. 돈의 칼, 권세의 칼, 명예의 칼, 직분의 칼, 경험의 칼이 있어도 절대로 쓰지말고 집어넣어야 된다.

어떤 어려움을 당해서 구원이 이루어질때까지 말씀이 나에게 응하여 질때까지 우리는 이길을 가야된다.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칼의 힘이 아니다. 정의와 평화의 생명이며 생명의 주체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삶속에서 순종과 헌신과 죽음과 사랑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악의 대항은 검과 몽치가 아니다. 손에 들고 잇는 돌을 다 내려놓아라. 온전히 희생하고 그저 감당하는 것이다.

내가 감당하고 지고가는 십자가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가족구원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알았더라면 옳은 소견을 내놓으며 시시때때로 시마다 때마다 자기주장을 하겠는가?

 

56절) 말씀을 이루기 원하여 오는 사건앞에 도망하는 자가 아닌 감당하는 자가 되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원하여 예수님에게 이런 사건이 왔고 우리 또한 원하든 원치 않는 사건과 상황들이 온다. 그 사건은 묵묵히 감당할 길만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그런데 본문에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고 하였다. 우리도 툭하면 도망가는 자리에 있다. 십자가의 길만이 살길이고 생명을 얻는 길이고 그릇에 부활의 생명을 담는 길인데 우리는 배신당하고 못참는다.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는 못참는다.

말씀이 구원의 길이 되는 인생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우리의 영도 원하는데 육이 너무 강팍하고 강하고 정복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두고 도망가고 흩어진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죽기를 거부하고 도망하고 싶다.

하나님이 무엇을 보여주기를 원하시냐면 모든 경험과 직분을 가지고 어떤 고난과 사건앞에서도 주님처럼 잘 죽어지고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시고 내 옆의 식구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를 팔고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상처 주는 이들를 참아주는 나에게 오히려 분내는 가족이 있는가? 이것을 내 삶의 결론이라고 인정하면 감당할 능력을 주신다. 참아낼수 있는 품어낼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인정하고 용납하고 처리하고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 검과 몽치를 들고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칼을 뽑지 말고 수없이 칼을 뽑아 찌르고 싶어도 칼집을 넣으시고 이것까지 참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들고 참고 감당하고 가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인생이 될줄 믿습니다.

 

적용 - 일시적으로 의분이나 혈기가 나서 하나님의 일을 거스리지는 않았는가? 나는 어떤 상황에 혈기가 나고 분이 나는가? 나의 가장 연악한 틈을 타고 사단은 들어온다. 점검해 보아라. 나는 어디에 약한가? 어디에서 사단의 그릇으로 내어주고 발빠르게 넘어가는가? 상대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연약한 것이 문제이고 내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영적전쟁에서 분별을 못했기 때문에 늘 혈기를 낼수밖에 없었고 구원의 역사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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