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마음 | 구인희 | 2016-05-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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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도서7:1-4절 개역한글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나그네와 행인같은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우선순위에 둬야될것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무엇이 좋은것인지 알기 힘들때 헛된 세상의 삶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것인지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두가지 길에서 어느것을 선택해야 더 나은길 더 복된길로 갈것인지 오늘 지혜자의 마음을 얻기를 원하시고 그 처방을 말씀에서 해주신다. 이름과 기름, 태어나는 날과 죽는날, 초상집과 잔칫집, 슬픔과 웃음, 책망하는 소리와 노래하는 소리, 일에 끝과 일의 시작, 옛날과 오늘을 비교하면서 우리 인생의 해결점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계속 강조하고 오는 것이다. 오늘 눈을 뜨면 판단하고 선택해야 될 일들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갈것인지, 어느것이 더 나은가, 어느것을 선택할것인가 선택이 늘 요청이 되어지는데 갈바를 알지 못하는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여 주tu서 참으로 복되고 생명이 있는 길로 인도함 받기를 원해서는 말씀에 붙들림을 받아야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된다.
<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 좋은 이름은 명성을 나타내고 좋은 기름은 향유를 나타내는데 이때 당시의 올리브유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기름은 재산과 비유할수 있다. 이름이 좋으냐? 재물이 좋으냐? 이땅의 어떠한 것보다도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구원받았다는 예수를 만났다는 사실이고 내 이름이 구원받은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이름은 없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는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으로 나를 보내신 자리 머문자리가 아름답게 되어지는가? 이름과 재물중에 무엇이 좋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이름만 남는다. 이름이 없이 왔는데 떠날때는 이름을 남기고 간다. 명성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에 대한 것이지만 성품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아니하는 누구에게도 숨길수 있는 내면의 세계에서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수 있는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성품이 드러나는 곳에 이름이 있다. 지혜로운 성품은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같아서 어디에 가든지 스며들고 품고 살리고 회복시키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런 선한양식이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래서 향기를 발하는 그 행실을 통하여 얻어지는 아름다운 이름이 우리들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교회손실을 가져오고 심령을 실족케 하고 상처를 주고 비방하고 불평하고 핍박하는 이름으로 남지 말고 큰 권세와 큰 재물이 전도자에게 있었지만 후대에 그 이름이 아름다워야 된다고 말한다. 지혜와 재물은 없어도 그 이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름. 어떠한 십자가 앞에서도 향기를 발할수 있는, 묵묵히 피를 흘리면서 매달려 모욕과 조롱을 다 당하여도 주님을 바라보며 감당할수 있는 아름다운 믿음의 이름. “여호와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져주신 주님의 이름. 주님이 제자를 삼으시고 우리들에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쫓아오기를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사람의 이름이 되기를 원하신는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성도라는 이름위에 더하여진 존귀한 직분의 이름. 세상과도 바꿀수 없는 이름에 대해서 이름값을 하는 능력을 입혀달라고 주님앞에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 하나님앞에 붙들림 받기 전 천국이 예비되기 전에는 사망을 두려워한다. 죽음이후에 심판에 대해서 확증을 가진자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망 권세 깨트리신 주님의 영이 우리안에 와있으면 어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경은 두가지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생명나무길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길이다. 어떤 나무의 열매를 맺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생명나무의 길은 너무나 합당한 구원의 하나님을 상징하는 이 나무의 원칙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의지하여 힘을 얻기를 원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분리된 모든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 나무의 원칙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길을 가기를 원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고 말씀보다는 자기 감정이 자기 판단이 우선이고 늘 옳고 그른것을 따지면서 주님을 떠나고 주님과 분리시키는 사단의 역사를 하는것이다. 죄중에 잉태해서 죄악가운데에 출생되었기 때문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망가운데 사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만세전에 택한 믿음의 자녀들에게 인생의 때에 찾아와주셔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신것이라”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놓으시고 생명나무아래로 이끌어 내셔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산자가 되어서 영생으로 들어가는 복을 주셨기 때문에 죽는것이 복되다 말씀하는 것이다. 썩어진 육신보다는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영혼을 위하여 살수있는, 죽음앞에서 자기 성찰을 진지하게 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유익을 주기 때문에 죽는 것이 낫다는 고백을한다.
<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 결혼식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 때문에 큰 기쁨이자 축하의 잔치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식에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부부가 자기를 부인하고 돕는 배필로 구원이 목적이 되는 인생이 되어져야 되는데 험악한 세상의 부부가 주님을 의지하고 손을 잡고 가야 되려면 자기 살을 깍는 고난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 승전가를 부를수 있는 결혼의 출발이 되게 해달라고 결혼식에 기도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이 없는 사람은 장례식에 안타까워하고 억울해서 통곡을 하고 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죽어있는 시체앞에서 자기 성찰을 한다. 삶을 반성해 보고 나의 죽음을 준비하게 되어지고 창조주를 기억하게 되어지고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져서 잔칫집보다는 장례식이 우리믿음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죽음앞에 남아있는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주님앞에 우리의 자신을 일깨워줄수 있는 초상집의 방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이유는 살아갈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기를 돌아볼수 있어서 유익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앞에 배반받고 상처받으면 비로서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어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어지는 천국을 사모하게 되어진다. 사람이 근심함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어진다. 죄에 대해서 회개하게 되어지고 인간의 최고의 감정이 회개라고 하였는데 성화의 구원을 이루기 원해서 회개하는 삶의 방식이 되어져야 된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거룩의 초점을 맞추어 구원의 관점에 눈도 열려지게 되어지고 주께 나아가는 은혜를 입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슬픔보다 웃음이 낫다. 구원이 목적이 된 인생은 사건에 대한 처방이 끝날꺼야, 안볼꺼야, 안할꺼야 라는 처방이 아니라 모든 현실에서 사랑을 배우고 용서를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양선을 배우고 성령을 힘입어서 산을 넘고 넘는 믿음의 역사가 삶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 > 전도자가 지혜를 배우려면 초상집에 가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정앞에 원망하고 불평할수 있는가? 악독하고 비방할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장례식장에 가보면 알수 있다. 우리들이 죽었을때 눈물을 흘려줄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사랑하는 식구가 나와 함께 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 할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져야 된다. 초상집에 가면 영원한 것과 이땅에 잠깐 있고 없어질 일시적인 것이 구별이 되어지고 영혼이 떠난 육체 앞에 육체는 영혼을 위한 그릇일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어진다. 부지런히 담을 허물고 묶인것을 풀고 천국을 위하여 준비하는 심령되기를 원한다. 죽음이 있는 이후에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지니까 가치관이 달라지게 되어진다. 오늘의 소중함을 알게되고 내옆의 가족의 귀중함도 알게 되어진다. 오늘 같이 예배를 드릴수 잇는 지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라. 왜 지혜자가 되고 우매자가 되면서 나눠지는가? 지혜자는 죽음을 준비할줄 안다.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안다. 오늘 내게 주신 한날을 통하여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분별한다. 우매자는 천년만년 살것처럼 썩어지고 그림자와 같이 흔적없이 지나갈 이땅에 왜 이렇게 미련도 많고 관계도 많은지, 쾌락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생활방식으로 노래와 웃음으로 장식하는 이런 우매자의 기쁨은 사라질것이라고 전도자는 말한다. 예수믿고 말씀듣는 우리들에게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오늘도 사단은 틈만나면 우리를 실족케 하고 무너지게 하고 말씀으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이런것에서 참된 구원을 받기 원하여 죄의 고백이 있기를 원하고 회개가 있기를 원하고 구원받고 오늘 내 육성이 죽어지는 장례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안식세계에 입성하는 승리가 있는 천국 환송식이 시마다 때마다 우리에게 일어나길 원한다. 지옥갈 속성이 죽어지고 천국으로 넘어가고 넘어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속하여 있는가? 내가 지혜자인지 우매자인지 알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내가 무엇을 듣기를 좋아하는가? 영에 속했는가 육에 속했는가? 분별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구원과 다른사람의 구원에 마음이 있는가? 내 육체의 즐거움과 행복에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우리자신이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돌이킬수 있고 천국을 준비할수있는 이 시간을 귀히 여기고 내 옆에 있는 식구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섬기는데 애쓰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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